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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요약 정리

인구 미래 공존 (책 요약정리)

한줄평: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p.12: 독자 여러분께 한 가지만 당부하고자 한다 데드크로스, 인구절벽 등의 살벌한 표현에 지레 겁먹어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는 걸 잊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냥 하는 속 빈 덕담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데드크로스가 시작되었으니, 인구가 줄어든다는 말은 오해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다만 한국사회 전반에서 '인구절벽'을 체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의 주축인 25~59세 인구가 2500만 명 이하로 떨어지고 전체 인구의 절반 이하가 되는 2030년 이후에야 인구절벽이 체감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앞으로 10년가량은 인구변동이 미치는 영향이 걱정하는 만큼 크지 않다는 뜻이 된다. 인구감소의 시간표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앞으로 인구감소가 언제, 누구에게 얼마큼의 영향을 주게 될지 정밀하게 예측하고 미리 대응방안을 마련해 추진한다면, 2020년대는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단, 조급함도 안이함도 금물이다. 조급함은 실효성보다 부작용이 큰 대책만 양산할 뿐이다.단기적 시야로 인구대책을 쏟아내며 싵한 시행착오를 거듭했떤 지난날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이함 또한 제2의 교사 임용대란, 지역의 대학 붕괴 등의 사회적 혼란을 낳을 뿐이다. 저출산/고령화 이슈가 15년 넘게 한국사회를 떠돌았지만 별다른 대웅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데드크로스를 맞았다. 마지막 기회로 주어진 2020년대를 또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려보낼 수는 없다.

 

개인은 지금 하는 일이 2030년 이후의 달라진 사회에서도 여전히 지속 가능한지를 따져보고,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역량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기업은 인구가 2030년 이후의 시장을 양적, 질적으로 어떻게 바꿔놓을지 정밀하게 예측해서 다각화든, 해외 진출이든, 다운사이징이든 필요한 대응책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국가는 말할 것도 없다.

 

다소 부족할지라도 저마다 인구학적 관점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개연성 높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인구변화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개인과 집단, 크고 작은 기업, 그리고 중앙 및 지방정부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데 이 책이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바란다.

 

 

 

 

 

p. 30

 

 

 

 

 

p.31: 오늘의 출생아 수는 대략 30년 후의 출생아 수를 결정한다고 했는데 오늘날의 출생아 수는 결국 30년 전의 출생아수, 특히 여아 출생아 수에 의해 이미 결정되었던 것이다. 과거 부모세대 그리고 당시 사회가 했던 선택의 여파를 오늘날 우리 사회가 온몸으로 겪는 것이다.

...

오늘의 인구는 한 세대 전의 인구변동에 의해 이미 정해졌다. 30년 뒤의 인구 역시 정해진 미래다.

 

 

 

 

p.41: 인구증가와 함께 성장의 시대를 누려온 세대, 인구 수는 경쟁의 지표와 마찬가지이므로 감소해도 괜찮다는 세대. 여러분은 어느 의견에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계시는가? '양쪽 다 일리 있다'는 말이 혜안처럼 보이지만, 미래의 방향성을 고려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인구학자에겐 영 찜찜한 답이다. 조금은 인구학자다운 답을 하자면, 나는 현재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을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 본다. 가장 큰 이유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적응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인구감소의 영향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현상의 기저에는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이 있다.

 

 

 

 

p.68: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 경제학과의 이스털린 교수가 제시한 '코호트 가설(Relative Cohort Size Hypothesis)'이란 게 있다. 사람들은 지금의 삶과 과거 청소년기의 삶을 비교해, 지금의 삶이 더 나으면 결혼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결혼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상향이어야 하는 건 주식 차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

 '완벽한 부모' 신드롬은 고려대 심리학과의 허지원 교수가 우리나라의 초저출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며 내놓은 개념으로, 준비가 덜 되었거나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다. 경제적이든 심리적이든 혹은 정서적이든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부모 되기를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것으로, 특히 현재 밀레니얼 세대의 성향을 잘 설명한다. 잘 키우고 싶은 열망이 너무 커서 오히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어쩌면 두려움과 이타성이 결합된 복합적인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

'코호트 가설'과 '완벽한 부모'라는 개념을 함께 생각해보면, 요즘 청년세대의 출산 기피와 고민이 한층 깊게 다가온다. 맨주먹으로 경제성장을 일구며 자식에겐 아낌없이 주었떤 부모 슬하에 자라난 지금의 청년세대는 전례없는 대학 진학률을 보여 주었으나, 그사이 일정한 성장궤도에 도달한 우리나라는 '보통의 삶'에 큰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는 국가가 되었다. 수업시간에 이 내용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을 하면 '나는 저 나이에 저런 고민까지 했던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모 되는 것에 대한 생각과 고민의 깊이가 다르다.

 

 

 

 

p.80: 멜서스와 다윈 이론 사이의 공통점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자원은 한정돼 있다.
  2. 공간의 밀도가 개체당 쓸 수 있는 자원의 양을 결정한다.
  3. 공간은 한정돼 있는데 개체 수가 급증하면 조절이 일어난다.
  4. 종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5. 이때 본인의 생존 본능이 후손 재생산 본능에 우선한다.

물론 사람에게 경쟁은 자원을 더 늘리는 생산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경쟁이 너무 격해지면 재생산 본능마저 억누르고 생존 본능이 더 크게 발현되는 것은 거대한 자연의 법칙이다. 일반적으로 동물 혹은 식물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같은 종끼리만 경쟁하는 것은 아니므로 경쟁 과정에서 살아남는 종이 있고 사라지는 종이 생겨난다. 살아남는 종도 경쟁에 유리하도록 변이를 하는데 그것이 진화다. 반면 이렇다 할 천적이 없어 동종끼리 주로 경쟁하는 인간은 출산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함으로써 경쟁 정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p.93

 

 

 

 

p.98: 혁신도시와 세종시가 완성된 지 5년이 넘은 현재 시점에서 평가한다면 수도권 인구집중 완화효과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인구학적 측면에서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공기업과 국책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일부 인구가 옮겨갔지만, 서울에 살던 청년들이 이주해간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이유를 짚고 싶다. 첫째, 혁신도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 간 안배를 고려하다 보니 전국에 10개나 되는 혁신도시가 건설됐다. 둘째, 그렇게 제한된 자원을 조개다 보니 각각의 혁신도시는 몇 개의 공기업이나 국책연구기관만 이전시켰을 뿐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도시의 기능이나 규모를 갖추지 못했다.

 

얼마 전 건축학자인 홍익대학교 유현준 교수와 혁신도시에 대해 이야기할 자리가 있었다. 인구분산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 혁신도시의 실패를 유현준 교수는 건축학의 관점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혁신도시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잇는데, 해당 지역의 특성이 두드러지기보단 서울의 모습과 너무 닮게 만든 것이 실패요인이라고 했다. 혁신도시는 규모나 기능 면에서 결코 서울이 될 수 없는데, 서울처럼 조성했으니 당연히 서울과 더 비교된다는 것이다.

 

 

 

 

p.111: "학생은 어느 나라에서 왔나?"

 

심드렁하던 나는 깜짝 놀라 떠듬떠듬 "한국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갑자기 큰 흥미를 보이시더니 한 아름 들고 온 자료를 뒤적여 종이 두 장을 찾아냈다. 한 장은 1990년 한국의 연령별 출산율 그래프였고, 다른 한 장은 1995년 미국의 그래프였다. 연령별 출산율은 여성들이 몇 살에 첫아이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그때까지 수업에 관심도 기대도 없던 나는 교수님이 보여주신 두 장의 그래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구학의 '인' 자도 모르던 내가 인구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순간이었다.

 

그래프로 본 1990년 우리나라 여성의 첫아이 출산은 25~26세에 집중되었고, 그 연령대를 지나면 급속히 떨어졌다. 반면 미국의 1995년 그래프는 꼭짓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정도로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20대 초반부터 점차 증가하기 시작해 20대 중반, 후반, 심지어 30대에도 출생아 수가 급격히 떨어지지 않았다. 즉 1990년대에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여성이 20대 중반에 첫째아이를 낳았던 반면 미국은 첫째아이를 낳는 특정 연령이 없었던 것이다.

 

교수님은 한국의 연령별 출산율 그래프가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형태라고 하셨다. 출산연령이 특정 시기에 몰려 있다는 것은 결혼 및 출산에 관해 사회에 매우 강력한 연령규범이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결혼적령기'라는게 엄연히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강력한 연령규범이 있다는 것은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은 서로 비슷하게 살아간다는 뜻이고, 여기서 벗어나는 데 스스로도 큰 불안을 느낀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해서든 혹은 자발적으로든 연령규범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물론 연령규범이 없는 사회는 통일되지 않아 뭔가 어수선하고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설명하며 교수님은 한 말씀 덧붙이셨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다양성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니, 한국의 강력한 연령규범이 유연해지면 사회도 그만큼 발전해 있을 것이다."

 

그 후 시간이 흘러 2018년, 어린이집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다. 바로 전 해에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36만 명대로 급락했다고 사회에 비상이 걸렸을 때다. 청중에게 "아이들이 많이 줄어서 운영이 어려우신가요, 아니면 아이들이 줄어서 오히려 한 명 한 명 보살피기가 편하신가요?"라며 문답을 주고받았는데, 뜻밖의 고충이 나왔다.

 

"아이 수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학부모의 연령이 너무 다양해서 소통방식을 많이 고민해야 해요."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문득 20여 년 전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강연이 끝나자마자 통계를 찾아보았다. 놀라웠다. <도표 1-16>을 보면 20대 중반에 뽀족한 봉우리를 그렸던 1993년의 그래프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완만해지고 있다. 29세, 30세, 31세, 이른바 '결혼적령기'라 했던 연려대에서도 봉우리는 현저히 낮아졌다. 반대로 심지어 40세 이상에서도 첫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출산율과 아이 수에만 집중하는 동안 연령별 출산율 곡선은 20여 년 전 미국사회와 유사하게 바뀌어 있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모두 다 비슷한 연령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비슷하게 키우는 나라가 아닌 것이다.

 

나는 어둡다는 우리나라의 출산율에 빛이 있다면 이것이라 생각한다.

 

 

 

 

 

p.121: 

1번 모형은 인구와 가용자원이 나란히 함께 증가하는 모습이다. 멜서스는 자원의 총량이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보았지만, 자원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1번처럼 자원의 총량이 빠르게 증가한다면 인구가 증가하더라도 자원의 총량을 추월하지 않아 큰 문제는 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 등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2번 모형은 자원의 총량이 이미 꽤 높은 수준에 올라 있고, 인구증가는 S자 형태를 띤다. 인구가 한동안 가파르게 증가하다가 자원의 총량을 넘어서지 않고 정체돼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모형이다. 아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그림일 것이다.

 

이번에는 아래쪽 그림을 보자. 두 가지 모두 가용자원보다 인구가 훨씬 많아졌을 때의 시나리오다. 이럴 때 인구는 안정적이지 못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3번 모형은 자원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인구가 급격히 증가해 자원의 총량을 넘어서는 경우다. 그러면 자연히 경쟁이 심화되고, 1인당 차지할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든다. 그 결과 삶의 질이 나빠져 인구가 줄어든다. 그 결과? 자원이 다시 증가한다. 이런 식으로 상충하며 균형점을 찾아가는 모형이다. 이처럼 인구가 계속 늘어나거나 마냥 줄어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요동치는 것도 가능하다.

 

가장 좋지 않은 경우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가용자원이 갑자기 줄어들고, 그 결과 삶의 질이 나빠져 인구도 급감하는 4번 모형이다.

 

이 외에 다른 모형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이것만으로 우리나라를 보면 3번 모형에 가장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나라 인구는 계속 증가해왔고, 그 결과 현재 우리는 자원과 인구가 맞물리는 첫 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용자원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단계적으로 도약(jump up)하는 경향이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가 그즈음에 있는 것은 아닐지. 우리가 가진 자원이 인구를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점에 이르렀고, 내국인만 따지면 2020년을 기점으로 인구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원부족이 계속되면 인구가 급감하기 시작할 것이다. 앞에서 말한 2050년이 그 시점이 되지 않을까. 이 모형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가 자원의 총량 이하로 줄어들고 나면 다시 상승세를 탈 수도 있을 것이다.

 

 

 

 

 

p.154: <도표 2-5>는 한 가구 내에 몇 명이 함께 살고 있는지, 어떤 조합으로 함께 살고 있는지, 어떤 연령대가 가구주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 가구를 여러 개의 세그먼트로 나누어본 결과다. 같은 세대라도 한 집에 몇 명이 사는지에 따라 삶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p.162: 인구학에서는 합계출산율, 출생아 수, 교육수준 및 교육과정, 대학 진학 시의 사회적 사건, 과학 기술 등을 망라해 세대가 공통으로 경험하는 삶의 궤적을 만들고, 그에 따라 세대를 나눈다.

  • 합계출산율: 형제가 몇 명인 환경인가?
  • 출생아 수: 한 반에 몇 명이 공부하는가?
  • 대학 진학률 및 입시제도: 어떤 제도하에, 몇 명이 경쟁하는가?
  • 취업 시기의 경제 이슈: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
  • 여성의 대학 진학률 및 취업률: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
  • 여성별 혼인율: 세그먼트의 특징 및 크기
  • 청소년기에 누렸던 대중문화: 가치관 형성기의 문화 요소
  • 기술환경의 변화: 스마트폰, SNS 활용 등

 

 

 

 

 

p.170: 현재 한국사회의 모든 세대를 통틀어 진보적 가치가 가장 강한 집단이 X세대인데, 따지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전 세대는 어릴 때 경제적으로 궁핍했지만 나이 들수록 사회적 기회가 커졌다. X세대도 자랄 때에는 사회적 기회가 점점 커질 것으로 기대해 부모님들이 아들이든 딸이든 공부를 시켰는데, 막상 이들이 졸업할 시점에 경제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바로 위에 있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엄청난 숫자로 노동시장에서 버티고 있는 바람에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쉽지 않고 위로 올라가기도 어려웠다. 승진한다 해도 부하직원은 없고 상사만 많아서 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직급은 과장인데 과원이 나 혼자다. 덕분에(?) 직장 내에서 멀티플레이어가 되었다.

 

이런 식이나 X세대는 '사회가 좀 이상한 것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질서에 겉으로는 순응하는 것 같지만 마음속에서는 저항한다. 그 결과일까, 이들은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1코노미'의 문을 연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X세대 이야기를 수업시간에도 몇 차례 소개했는데, 1970년대 말 80년대 초반생 학생들이 공감되면서도 '웃프다'는 표현을 했다. 후임이 별로 없어서 사회에선 완전한 어른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은데, 온라인 공간에선 완전 '노땅'이라는 것이다. 밀레니얼들은 알바비를 모아서라도 플렉스한다는데, 이 또한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나름대로 트렌디하게 대중문화를 소비하고 있지만, 취업이 다소 늦어지는 바람에 취업한 순간부터 집을 사기 위해 월급을 모으느라 플렉스는 꿈도 못 꾼다면서 말이다.

 

 

 

 

p.195: 이처럼 시장에서는 전체적인 가구 규모 혹은 각 세그먼트가 언제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예측하면서 기존의 전략, 재화 혹은 서비스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판단할 수 있다. 이는 환경에 적응하며 기획하는 영역에 가깝다. 그렇다면 공공의 영역에서는 가구 세그먼트의 변화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정책 영역은 인구를 환경적 요소로만 보긴 어렵고, 서로가 상호작용하는 영향력이 매우 큰 편이므로 여러 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고령 1인 가구의 증가가 두드러지는 지역에서는 안전 및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에 대해 한층 더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가구 분화가 거의 완료된 연령대를 관찰해, 이를 토대로 후속세대는 언제 고령 1인 가구가 되며 그 규모는 얼마나 될는지 정교하게 예측하면서 정책을 설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 또한 환경 변화에 따른 적응의 영역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청년 1인 가구 증가는 맥락이 다른다. 청년 1인 가구는 평생 1인 가구로 살아갈 수도 있고, 결혼을 해 2인 가구가 될 수도, 아이를 낳아 3인 가구가 될 수도 있다. 가구의 확장성이 있고 선택지가 다양하다. 지금의 현상만 놓고 보면 청년 중에서 밀레니얼 1인 가구가 압도적인 것처럼 보이고, 이들은 직장 근처의 작은 주거환경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청년들을 위한 주거환경을 고민할 때에는 현재만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이들이 미래 도약을 할 수 있도록 기획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인구도 가구도 증가해온 규모의 경제 패러다임을 살아왔다. 이제부터는 인구는 줄어드는데 가구는 늘어나고, 가구 내부에서도 소위 '대장주'가 바뀌는 상전벽해가 일어나며 다양성의 경제 시대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현재 대세인 가구 세그먼트는 연령이 높아지며 삶의 궤적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규모도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도 인구변화를 수로만 본다면 미래에 필요한 전략을 마련할 수 없다. 게다가 수로만 보면 2030년까지 우리나라는 그리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텐데, 이 결론은 매우 편협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구집단마다 정서적 특성과 가구변동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p.203: 그럼 정말로 우리 경제는 인구감소와 함께 나빠질 일만 남았을까?

 

인구와 경제 간의 관계는 인류 역사와 함께해온 인구학이나 경제학의 오랜 논쟁 주제다. 인구감소가 경제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믿는 관점은 경제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머릿수에 따른다고 보는 인구결정론에 가깝다. 반대로 인구가 줄어든다고 필연적으로 경기침체가 오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관점은 경제를 구성하는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로 인구를 고려한다.

 

나는 아무래도 인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니만큼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여기는 인구 결정론자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인구가 감소세에 접어들었으니 경제도 즉각적으로 나빠질 거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가 받고 있는 인구배당이 인구가 감소한다고 곧바로 줄지 않고 최소한 2020년대까지는 유지될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나는 <정해진 미래>에서 인구오너스(onus)와 인구보너스(bonus) 그리고 인구배당(dividened)의 개념을 소개했다. 다시 한 번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인구는 생산도 하지만 자원을 소비한다. 자원의 양은 일정한데 자원을 소비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인구는 경제에 부담이 된다. 경제오너스 상황이다. 반대로 자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경제는 성장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생산가능인구, 즉 일하는 사람이 많으면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구보너스를 받게 되는 때다.

 

여기서 이하는 사람이 많기만 한 게 아니라 그들이 잘 교육받고 건강도 좋아 한 명 한 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의 양이 크게 늘어난다면 경제성장에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교육과 건강 등 인적자원 개발에 잘 투자한 결과라는 측면에서 이때는 인구배당을 받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구배당은 인구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보너스와 배당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보너스는 인구의 양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고 배당은 인구가 건강하고 교육을 잘 받았다는 인적자원으로서의 측면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건강하고 교육수준도 높은 것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진 선물이 아니다. 사회가 의료보험 같은 제도도 만들고 금연 프로그램 같은 보건정책도 만들어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라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해야 하고, 더 많은 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데 끊임없이 투자해야 간신히 얻을 수 있는 결과다.

 

일반적으로 때 되면 받는 보너스보다는 성공 투자로 얻게 되는 배당의 액수가 훨씬 크다. 인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전후 100년도 안 되어 이만큼 잘살게 된 것도 배당률 높은 인구 투자에 성공한 덕분이다.

 

 

 

 

p.217: 얼마 전 연구실에 생일을 맞이한 학생이 있어 조촐하게 생일 축하 케이크를 잘랐다. 마침 서른 번째 생일이어서 학생들이 장난스럽게 고 김광석 님의 '서른 즈음에'를 함께 불렀다. 신기했다. 내가 서른 즈음이었을 때에 비해 외모는 물론이고 모든 것이 어려 보이기만 한 1990년대생 학생들이 이 노래의 감성을 과연 이해할까?

 

이런 '꼰대' 같은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내가 꼰대여서라기보다는 실제로 요즘 서른 살이 예전보다 '어리기' 때문이다. 궤변이 아니라, 1990년대와 2021년 서른 살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가 그렇다. 통계청이 제공하는 통계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김광석 님이 '서른 즈음에'를 발표한 1995년 우리나라에는 약 4500만 명이 살았고, 평균연령은 31.2세였다. 인구피라미드의 모습은 평균연령 위쪽으로는 명확한 삼각형이고 아래로는 전반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역삼각형 형태를 띠었다. 김광석 님이 담아냈던 서른 즈음은 당시 우리나라 허리 연령대이자 가장 규모가 컸던 사람들의 삶이었다. 허리인 만큼 서른 살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돌봐아 할 게 많았고, 그에 상응하는 어른 대접을 받았다. 노래의 가사처럼 또 하루 멀어져가고 저물어가는 감성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인구학적 위치였던 것이다.

 

반면 2021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외국인을 포함해 약 5200만명이 살고 있고, 평균연령은 42.8세다. 서른 살 위로는 계속 인구가 많아지다가 60세를 기점으로 줄어드는 다이아몬드 형태이고, 서른 살 아래로는 인구가 급감하는 명확한 역삼각형의 인구 구조다. 인구피라미드만 보더라도 2020년과 1995년은 전혀 다른 사회임을 알 수 있다. 비록 생물학적 나이는 같더라도 서른 즈음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는 결코 같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1995년의 서른은 더 어른이고 2020년의 서른은 어리다는 말인가? 사회적 대우는 그럴지 몰라도, 스스로 느끼는 사회적 부담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성인으로서 짊어져야할 무게는 외려 2020년의 서른 즈음이 더욱 무겁다. 앞서 말한 인구 압박 때문이다.

인구 압박은 어떤 연령이 다른 연령 혹은 연령 집단에 비해 얼마나 크거나 작은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회생활 초창기에 받는 인구 압박은 생산연령대 인구와의 비율을 따져 가늠할 수 있다. 만일 30세 인구가 100명이고 생산연령대인 31~59세가 1000명이면 30세 인구집단은 10만큼의 인구 압박을 받는다는 뜻이다. 숫자가 클수록 당연히 압력도 커진다. 1995년 서른 살에게 지워졌던 31~59세의 압박은 20.3이었다. 그런데 2020년에는 30세 한 명을 누르고 있는 힘이 35.0이나 된다.

 

무게를 지우는 연령대를 30세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31~39세로 좁혀보면 1995년의 압박의 강도는 9.5, 2020년의 압박의 강도는 10.3이다. 인구만으로도 과거에 비해 지금의 압박 수준이 높다. 여기에 교육수준까지 고려하면 압박의 강도는 더 세진다. 대학 진학률을 고려해 압박 강도를 산출해보자. 1995년의 서른 살은 100명 중 34명만 대학을 나왔다. 당시 이들은 30세에 대학을 나온31~39세로부터 7.4의 인구 압박을 받았다. 아직 2020년의 30세 교육수준을 알 수 있는 통계가 없으니 2015년 통계를 적용하면, 2015년 대졸 30세는 대졸 31~39세로부터 9.9만큼의 압박을 받았다. 2020년은 이보다 더 높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커져버린 인구 압박의 무게는 자연스레 사회적 진도를 늦춰 놓는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서른 살이 집에서나 사회에서나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오늘날의 서른 살이 과거에 비해 어리거나 편하게 살어가 아니라, 1995년의 서른 즈음으로서는 상상도 못했을 인구 압박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p.260: 정년 연장과 관련해서 발생할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정년 연장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아마도 가장 클 것 같다. 노동시장은 파이프와 같아서 한쪽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다른 쪽에서 들어갈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위에서 퇴지하지 않고 자리를 버티면 그만큼 청년들이 들어갈 입지가 좁아지지 않을까?

 

그것을 알면서도 내가 정년 연장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지금부터 정년 연장을 준비한다 해도 앞서 언급한 수많은 난제를 해결하느라 실제로 제도가 시행되는 것은 정말 빨라야 2027년 혹은 2028년이나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 노동시장에 갓 들어갔거나 들어갈 준비를 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되어 있을 테니 사회초년생은 아니다. 2020년대 후반에 정년이 연장되었을 때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인구집단은 Z세대이며, 그중에서도 2002년 이후 태어난 초저출산 세대가 주축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잘 준비되어 2027년부터 정년이 65세로 연장된다고 해보자. 2027년 61세가 되는 사람들은 1966년생들이다. 이들이 65세가 되는 때는 2031년이다. 그렇게 되면 2031년에 1966년생부터 1970년생까지가 정년 연장으로 노동시장에 남아있을 수 있고, 이들의 인구 크기는 어림잡아 414만 명이다. 앞에서 2021년부터 2031년까지 주요생산인구(25~59세)가 315만 명가량 줄어들 것이라 했고, 그때부터 인구절벽을 사회 모든 곳에서 느낄 것이라 했다. 그런데 정년 연장을 통해 2031년 414만명이 노동시장에서 더 활동할 수 있다면? 인구절벽이 시작되는 시간은 당연히 뒤로 미뤄진다.

 

 

 

 

p.265: 나는 외국인과의 공존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내의 세대 간 공존이 먼저라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갈등의 싹을 먼저 잠재우고, 그 뒤에 외국인을 받는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p.270: 다행히도 자라나는 Z세대에겐 외국인이 어색한 존재가 아니다. 잠시 방송에서 유머로도 언급된 적이 있는데, 외국인을 만난 한국인의 반응이 세대마다 다르다고 한다. 길을 헤매고 있는 외국인을 보면 베이비붐 세대는 힐끗 쳐다보는 사람이 다수고, X세대는 옆의 친구를 툭툭 치며 '네가 가서 말 걸어봐'라고 한다고. 반면 밀레니얼 세대는 먼저 다가가서 영어로 말을 건다고 한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Z세대였다. 그들은 일단 한국말로 말을 걸고, 상대방이 한국어를 못하면 영어로 대화한다고 한다.

 

싱거운 유머이지만, 연구실과 수업시간의 Z세대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들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한 번쯤은 반에 외국인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도 대부분 국적이 다양하다고 했다. 이런 Z세대가 2030년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들어오고 2040년대에는 우리의 핵심 인구가 된다. 이 세대가 핵심 인구가 되면 외국인에 대한 수용도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p.280: 연금제도만이 아니라 국가의 거의 모든 제도와 정책은 기성세대의 관점과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어지고 설계되고 있다. 판단의 기준이 먼 미래가 아니라 현재 혹은 코앞의 미래라는 말이다.

 

판단의 기준이 현재가 아니라 미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기성세대보다는 청년들의 시각과 견해가 더 중용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평균연령 43.4세인 한국사회에서 아직 어른의 역할을 타의로든 자의로든 하기 어려운 청년들에겐 스스로 기획할 기회가 많지 않다. 사회생활 시작도 기성세대보다 늦었고 필연적으로 근속연수도 짧다 보니 기획을 믿고 맡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번 물어보기라도 하자. 이미 여기까지 실천하고 계신다면, 진정한 사회 어른이시다. 존경스럽다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