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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요약 정리

(나를 숨 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 (책 요약정리)

한줄평: 김이나 클라스


p.6: 언어가 없던 때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은 지금보다 덜 세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 인간의 감정은 훨씬 개인 고유의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소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가장 가까운 언어를 골라서 소통하고 있다. 수의 법칙을 이해하기 전에 구구단을 멜로디로 외운 다음 법칙을 이해하듯, 우리는 어느새 너무 당연해진 언어를 통해 관성적으로 대화하고, 사고한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때조차, 우리는 정해진 언어 속에 갇혀서 할 수밖에 없다.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언어를 통해 누군가를 이해하고 나의 마음을 전달하지만 정작 언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에는 소홀하니, 마음이 통하는 대화라는 것은 그토록 귀하다.

 

 

 

 

p.24: 열 명의 사람 중 두세 명에게서 미움을 받는다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게 백 명, 천 명이 넘어가면 두렵다. 퍼센티지로는 동률이어도 숫자로 세어지는 마음이 미움이다. 살면서 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어느 순간 이에 대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긴 대로 살아야겠다는 것' 말이다. 방송을 하면서부턴 더더욱 그랬다. 어쩔 수 없이 호불호의 평가를 받아야 되는 일을 시작한 이상, 내 방향성은 더 명확해졌다. 그건 바로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는 것이다.

 

 

 

 

p.48: 공감에 대한 나의 오류는 '쓰는 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다는 데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선, 덜 구체적이고 넓은 테두리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착각. 이를테면 이상형을 따질 때 '짝눈, 깨끗한 피부, 예쁜 손가락, 야무진 입매' 등등을 열거하기보다 '눈코입이 달린 사람'이라고 쓰는 게 더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맥락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종이 변태' 에피소드나 <저녁하늘> 일화를 통해 내가 배운 건, 공감은 오히려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공감은 기억이 아닌 감정에서 나온다. 즉 상황의 싱크로율이 같지 않더라도, 심지어 전혀 겪지 않은 일이라 해도 디테일한 설명이 사람들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해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공감을 사는 일인 것이다.

 

 

 

 

p.66: 하루 정도의 시간이 지나 긴 답장을 받았다. 말미에는 고개를 들 수가 없게도 사과를 해주어 고맙다는 말도 포함돼 있었다. 나는 내가 잘못을 저지른 상대가 좋은 사람이어서 다행이라는 비겁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또 한 번 사무치게 미안했다.

 

 

 

 

p.71: 아쉬운 건 다정한 사람들은 말수가 적다는 거다.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게 익숙한 사람,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풀어헤치기보다는 품어 버릇하는 사람들. 이는 다정한 이들이 가진 특성이다. 굳이, 어딘가에, 나의 마음을 글자로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혹시 악플에 상처받는 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파본 적이 있다면, 좀 더 요란스럽게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말들을 써보기를 부탁한다. 그 한마디가 어쩌면 소중한 그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p.123: '결혼도 했는데 왜 외롭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은, 나를 정말이지 한없이 외롭게 만든다. 나에게 외로움을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오롯이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다.

 

 

 

 

p.125: 음악이 좋다가 싫어지는 감정은 사랑에 빠졌다 식어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한눈에 반하듯이 멜로디에 반하고, 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어 하루가 멀다 하고 데이트를 하듯이 매일같이 음악을 듣다가 결국 비슷해지는 패턴에 찾아오는 권태기, 그리고 싫증. 처음 나를 설레게 했던 그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해질 때 마음이 예전과 달라진다는 점에서 꽤 닮지 않았는가.

 

 

 

 

p.142: 수많은 격언들은 때로 정확하게 서로를 대치한다.

'모르는 게 약이다' vs '아는 게 힘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vs '쇠뿔도 단김에 뽑아라'

나이에 대한 말도 마찬가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풍선과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는 말풍선은 뽀득뽀득 소리를 내며 부대낀다.

 

 

 

 

p.155: 수많은 무안한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유난스러움을 지켜준 나에게 새삼 고맙다. 보통 유난스러운 게 아닌 덕이었는지, 수치심에 취약한 나임에도 불구하고 꺾이질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나의 성향이 결국, 작사가가 되는 데 큰 몫을 했을 테니 말이다. 생각건대, 유난스럽다고 지적받은 적이 있다면 그 부분이 바로 당신을 빛나게 해줄 무언가일 것이다.

 

그러니 유난스러운 자들이여, 온 힘을 다해 스스로의 특별함을 지키자.

 

 

 

 

p.160: 무서운 영화를 보다가 너무 무서울 때 내게 하는 습관이 있다. 화면에 보이지 않는 제작진을 떠올리는 거다. 그러면 방금 전까지 코너에 몰린 듯 두려웠던 감정이 사라지고 오히려 영화가 너무 무섭지 않아서 문제일 지경이 된다. 그럴거면 왜 무서운 영화를 볼까 싶지만, 그만큼 확실한 방법이란 소리다.

 

 

 

 

p.192: 기억하자. 오래 살아남는 시간 속에 잠깐씩 비참하고 볼품 없는 순간들은 추한 것이 아니란 걸. 아무도 영원히 근사한 채로 버텨낼 수는 없단 걸.

 

 

 

 

p.208: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하는 총체적인 그 연애의 모습이 저는 항상 탱고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패턴 속에 있지만 엇박이 있고, 굉장히 기쁜 멜로디 속에 흥이 차오르다가도 극단적으로 슬퍼지고... 또 유명한 대사도 있잖아요.

"탱고는 실수가 나서 발이 엉키거나 스텝이 꼬이는 것, 그것조차도 탱고다."

 

 

 

 

p.215: 향을 통해 내 안에 감정, 기억이 생생하게 되돌아오는 것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한다.

 

 

 

 

p.222: [완벽의 비결]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의 창업자인 에드윈 캣멀. 누군가가 "매번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비결이 뭔가요?"라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 대답은 의외였어요.

"어떤 작품이든 시작할 땐 다 형편없죠. 매일 하는 회의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도 사실 대부분은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괜찮아요.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수정하면서 더 분명한 형태로 진화하니까요."

실제로 픽사에서는 처음 나온 작품의 초안을 대부분 버린대요.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디어들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흔한 것들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에게 배웁니다. 결국,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하늘에서 떨어진 능력이 아닌 열정과 끈기라는 걸요.

 

 

 

 

p.265: '예민하게 수집한 단어로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사람'

 

 

 

 

p.266: 노랫말은 시와 달라서 너무 생경한 단어를 쓰기도 어렵고 지나치게 난해한 표현을 써서도 안 된다. 들을 때 귀에 쉽게 감겨 와야 하니 누구나 쓸 법한 일상어가 주재료다. 작사가의 개성과 철학을 화려하게 드러낸 가사는 오히려 어색하고 쉽게 질리니 참 묘한 장르다.

 


[리볼버 리스트]

김지운 감독 이병헌 주연의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가 있다. 특유의 세련된 느와르 감성 때문에 아주 좋아했던 영화인데, (스포주의) 극중 이병헌은 불의의 사건에 휘말려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자신을 파괴하려고 했던 이들을 모두 죽이고 영화가 마무리된다.

 

달콤한 인생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한때는 비슷한 결심을 하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살면서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다섯 명 모이면, 총알이 여섯 발 들어가는 리볼버를 구해다가 내 삶의 마지막 날에 한 명씩 만나서 차례로 쏴버리고, 마지막 한발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과 하직하자.'

요절에 대한 로망(?)이 있던 철없는 시절이었다. 인류의 미래가 궁금해져서 장수에 대한 의지가 생긴 이후로는 그런 생각을 버리긴 했...지만 만약에 그 시나리오를 실제로 실행해야 한다면 현재로서 대략 4명 정도 리스트가 나온다.

 

그들의 공통점은 나에게 정신적으로 상처를 준 사람들이다.

 

'상처를 준다 / 상처를 받는다'라는 표현은 점잖은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잔인하기도 하다. 상처를 받은 사람의 고통과 더러운 기분을 '상처'라는 점잖은 한 마디로 퉁 치려는 시도는 영 찜찜하다. 총도 칼도 아닌 고작 세치 혀 놀림으로 사람의 마음을 잔인하게 찢을 수 있다는 게 무섭기도 하다.

 

나는 신경성이 낮은 편이라 그런지, 상처를 잘 받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상처를 아예 안 받는 것도 아니다.

내게 트라우마를 남겼던 일들을 돌이켜보면, 주로 '모욕감'이라는 감정이 문제였던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했던 발언이 있다. 한 검사의 비하적 의도가 담긴 질문에 대해 '저는 상당히 모욕감을 느끼지만, 토론에 지장 없이 서로 웃으며 넘어갑시다'라고 대답 했던 모습이 영상으로 남아있다.

상대방의 문제를 지적하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너그러운 아량까지 베푸는, 강단 있고 품위 넘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매우 서툴다. 어릴 때는 '화내면 지는 것'이라고 믿어서 안 괜찮아도 초연한 척, 쿨한 척을 했던 것 같다. 실제로 기질이 무던하기도 해서 더 그렇다. 원래 화가 많고 짜증을 잘 내는 성격이면 차라리 그때그때 표현을 할 텐데, 그냥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기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그게 일종의 성격이 되어 어떤 일에도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스크래치를 낼 정도면 정말 미친 인간 or 미친 짓거리였을 텐데 리볼버 리스트에 올라간 그들은 도덕책...

 

아직 총알 한 발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다행이다. 내 인생을 좀 먹었던 인간들을 모아봐야 겨우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고, 아직 한 명을 더 고를 수 있다는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다. 인간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인간을 대할 때 '얘는 나중에 죽이면 되니까'라고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남아있다는 거니까.